현란한 세상 속에서김도훈 작가는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강렬하다. 그것은 원초적인 순간인데, 작업은무척이나 현대적인 추상이다. Cover-up 시리즈를 작업하던 시기부터 이어 온 관계와 규칙 속에서달라지는 감정을 표현해온 김도훈 작가의 Camouflage 시리즈는 한층 더 수행적인 느낌이지만 어두움 위에 밝음을, 안정감 위에 생동감을 더하며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에 대해 은근슬쩍 숨겨놓은듯하기도 하다.‘강렬한 인상의’라는 의미를 가진 스페인어로 ‘alucinante’가 있다. 쿠바 출신 작가 레이날도 아레나스의 소설 El mundo alucinante가 <현란한 세상>으로 번역된 것은 어떤 묘한 기운을 만들어냈다. 특정 국가의 시대 배경임을 전제하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인 실존의 차원에서 볼 때 주인공이계속해서 망명하는 과정은 성장도, 퇴행도 아니게 느껴진다. 그저 현란한 세상 앞에 강렬하게 버틸뿐이다. 살기 위해, 존재하기 위해 활동하는 것이다.김도훈 작가의 작업들이 추상화이면서도 강렬한 이유는 세상의 현란함에 지지 않고 활동적이기때문이다. 시멘트를 기반으로 한 작품은 그 자체로 자신의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으며, 도시적인 동시에 야생적이다. 그래서 흩뿌려진 색과 형태, 그리고 질감이 주는 생동감은 집요하기도 하고 순수하기도 한 작가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것은 camouflage, 즉 ‘위장’에 대한 마음과 눈의 탐구다.작가 노트에서 빌려온 “나 또한 그런 인간이다. 우리는 위장을 그만 둘 수는 없지만, 그 거짓들로인해 언젠가 아플 날이 올 거다.”라는 말은 흡사 섬뜩한 예언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났기에 안도감마저 든다. 위장이라는 인간의 행동 속성을 직관하는 진심 어린 고백이기 때문이다. 모든 진심이 꼭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작가의 진술은 주관에 기반하면서도 꽤 객관적이어서 진실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어쩌면 그것이 이 시리즈가 가진 강렬함의 실체다.또한 특징적인 것은 이러한 시리즈가 작품의 성숙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도 그 과감성으로 인해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강박적인 성장 스토리를 써나가기보다는 처음부터생각하고 있었던,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세상을 보는 눈을 확장해나가는 김도훈만의 방식인 것이다. 그래서 이 고민과 연구는 Camouflage라는 하나의 압축된 개념 안에서, 그리고 젊지만 묵직한그의 마음과 작업의 프레임 안에서 성찰의 시간을 만들어낸다. 작업이 전시되었다는 대상적 차원을 넘어 존재하고 있다는 본연의 이유로 대면된다.앞서 소개한 <현란한 세상>에서의 한 구절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인간의 본능과 같은‘노력’에 대한 역설적인 문장이 마음에 와 닿듯 김도훈 작가의 진중함이 가진 자기만의 색이 고유의 시간을 버텨내 가기를 바라며.“유년기가 있다면, 그것은 어른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어른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없다. 그 노력은 시간 낭비다.”■글/ 배민영(예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