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질감을 담은 ‘한지’는 삶을 바라보던 나의 모든 생각과 시각이 무너질 때, 희망과 치유의
힘을 이끌어 내준 자연과 닮아있다. ‘한지’를 기반으로 작업을
계속 이어오면서, 반짝이는 샹들리에와 같은 소재로 인간의 욕망을 표현해온 나는, 어느 날 예고없이 찾아온 수수께끼 같고 부당하게 느껴지는 시련 앞에 인간의 욕망을 논하는 것이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자연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생성과 소멸, 채움과 비움을 반복하며 지켜지는 단단한 생명력에 위로를
받았다.
자연물 중 처음으로 사적인 시선과 감정을 이입하고 나를
투영할 수 있는 것은 ‘돌’이었다. 흥미로운 조형성을 지닌 ‘돌’은
마모와 풍화를 겪으며 긴 세월을 축적한다. 나는 ‘돌’에 담긴 자연의 순환을 통해 자존하는 생명력과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에 대한 숭고함과 믿음, 의지를 발견한다. 이러한 자연으로부터의 영감은 보여지는 화려함만이
아닌 내면의 단단함을 바라보게 하였다.
나의 작업의 근간은 반복과 쌓음이다. 한지 위에 오랜 시간 쌓아 올린 겹겹의 색과 행위로 약한 종이의 본성을 지우고 견고한 물성을 부여하여 대지의
이미지를 재현한다. 한지는 외부의 요소를 그대로 흡수하고, 그
스며든 색과 머금어진 수분이 마르고 적셔지기를 반복하면서 깊이가 더해지고, 단단해진다. 이렇게 쌓여진 시간의 흔적들이 자연에서 발견되는 단단한 생명력임을 이야기하며,
삶의 반복에는 자연이 가진 것과 같은 생명력이 있음을 이야기 하고 싶다.
한지가 수분을 머금었다 건조되는 속도와 나의 행위의 반복에서
일어나는 우연성이 지닌 조형적 특성과 효과는 인생의 여정과 같이 우연하게 일어나는 일들로 완성되는 나의 이야기와 같다. 이러한 반복적인 행위는 곧, 삶의 노동과 희망의 중간에서 나의 시간을
오롯이 담아낸 기록이다. 매일의
순간들과 많은 과정이 쌓여 지금에 이른 것과 같이, 반복적으로 쌓인 색들은 깊이가 더해지면서 특유한
색을 만들어내고, 작업 과정은 고된 노동인 동시에 나에게는 치유의 시간이 된다.